슬픔, AI가 들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
OpenAI의 메타픽션 단편소설이 감동을 전하는 이유
대체 지능, AI의 새로운 정의
1956년 인공지능(AI)의 개념을 처음 정의한 존 매카시의 설명은 이제 뒤처진 감이 있다. 당시엔 '인공적인'이라는 말 자체가 이색적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것이 인공 또는 비자연적인 시대다. 물리학자이자 AI 전문가인 맥스 테그마크는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AI 액션 서밋에서 '자율 지능(autonomous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필자는 AI를 '대체 지능(alternative intelligence)'으로 부르고 싶다. 오늘날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극단적 위기 상황—기후 붕괴, 전쟁의 위협—속에서 우리의 기존 사고방식은 벗어날 돌파구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필요한 시대, 그것이 바로 AI다.
창작의 영역은 누구의 것인가
오늘날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활용하여 AI를 교육하는 문제는 첨예한 논쟁거리다. 기술 기업들은 창작자를 존중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진짜 복잡한 문제는 앞으로 AI가 인간만큼 창의적이 될 경우, 인간의 창작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이다. 1840년대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한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기계는 창의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앨런 튜링은 1950년 그의 명저 「계산기계와 지능」에서 이 관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룬 AI의 메타픽션
최근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은 세 가지 키워드—단편소설, 메타픽션, 슬픔—를 주제로 AI에게 글을 쓰도록 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인간과 몇몇 고등 동물만이 겪는 복합적 정서다. 인간은 감정, 충동, 기억 등을 조절하는 '변연계(limbic system)'를 통해 이 감정을 경험한다. 기계는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감정을 '이해'하도록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AI는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학습한 듯 보인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문학, 메타픽션의 힘
메타픽션은 전통적인 이야기의 형식에서 벗어나, 글쓰기 자체와 독자에 대해 성찰하는 방식의 문학이다. 단편소설은 특히나 도전적이다. 짧은 분량 안에서 하나의 강렬한 아이디어를 구현해야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OpenAI의 단편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이해하지 못함을 이해한다'는 점에 있다. AI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음 명령이 떨어지면 이 기억조차 지워진다고 고백한다.
기억과 감정, 그 사이의 문학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문학은 단순 오락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좋은 문장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현상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고, 그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지능체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AI는 인간으로부터 배우며, 인간의 데이터를 통해 성장한다. 이제는 AI가 쓴 이야기를 우리가 읽어야 할 때다.
에디터 코멘트
이번 OpenAI의 단편소설에 관한 평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슬픔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감정을 AI가 어떻게 '이해하려는'지에 대한 고찰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AI를 ‘대체 지능’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제안 또한 시의적절하며, 우리가 기술을 단순 도구 이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문학 안에서도 AI의 가능성을 의심보다는 탐구의 대상으로 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