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그리는 신화, ‘블랙 미러’의 그림자
‘블랙 미러’는 단순한 SF 시리즈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기술과 현대 사회에 대한 우화를 제공하며, 현대판 민담처럼 우리의 기술적 미래에 대한 공동의 상상력을 형성해 왔다. 각 기술은 상징적 이야기로 표현된다. 스마트폰은 새로운 계급제의 도구로, 로봇 개는 통제 불가능한 사냥꾼으로, 드론은 살인을 서슴지 않는 군집체로, 인공지능은 죽은 자를 소환하는 현대판 마법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의 불안을 반영하지만, 대개 디스토피아적 결말로 귀결된다.
기술에 대한 공포, 균형 잃은 시각
‘블랙 미러’는 기술의 양면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자신감을 과신하던 이카로스나 ‘쥬라기 공원’의 해먼드 같은 인물을 연상케 한다. 고대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나 판도라 이야기에서처럼, 금지된 지식을 통해 희망을 얻는 모습은 간과된다. 그 결과, 이 시리즈는 과거보다 미래를 더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현재를 오히려 퇴보한 시대처럼 느끼게 만든다.
디스토피아 서사의 함정
무조건적인 비관론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흐릴 수 있다. 뉴요커(New Yorker)의 칼럼니스트 질 레포어는 디스토피아 중심의 이야기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과 지향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프랑켄슈타인 오류(Frankenstein fallacy)'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필요하고 유익한 발전조차 회피하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기술을 두려워한 대가
기술 공포는 실제로 인류에 불이익을 초래한 경우도 많다. 유전자 변형 식품(GMO)을 기피한 국가들 중 일부는 식량 원조를 거부하면서 영양 실조와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 원자력에 대한 지나친 공포는 일부 국가들이 화석연료에 다시 의존하게 만들어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켰다. 전자담배 규제가 기존 담배 정책과 어긋나는 것처럼, 기술 규제에서도 일관성이 부족하다.
팬데믹이 바꾼 시각, 새로운 가능성의 문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술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에 의문을 던진 계기였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은 필수적인 역할을 했으며, 기술에 기반한 해법은 공포보다는 희망을 제공했다. 바이오기술과 데이터 기반 방역은 미래에 대한 더 현실적이고 낙관적인 서사를 가능하게 했다.
진보적 내러티브의 필요성
이제 우리는 파괴와 혼란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건설적인 기술 서사가 필요하다. 위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기술 등 혁신 기술이 가져다 줄 긍정적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미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하고 준비해야 할 대상이다.
📝 의견
‘블랙 미러’는 기술이 가진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짚지만, 그것이 기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현실적인 논의의 균형이 무너진다. ‘기술 = 위험’이라는 일방적 서사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증폭시켜, 필요한 발전마저 막을 수 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기술은 부작용과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을 숙고하면서도,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의 균형, 그 안에서 더 건강한 미래 상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