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을 추구하는 과학, '증거'의 의미를 되묻다
수학과 문화, 그리고 믿음의 진화에 대한 통찰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교의 아담 쿠차르스키 교수는 신간 『Proof: The Uncertain Science of Certainty』에서 우리가 '증거'와 '확실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신뢰하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범죄 수사나 기후 변화 대응과 같이 신속한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증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화에 따라 달라진 수학 개념
서구는 배척했던 부정수를 동양은 실용적으로 수용
쿠차르스키는 수학적 개념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사례에 주목한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부정수(negative numbers)를 비합리적이라며 배제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초기부터 금융 활동에 활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수학적 사고도 문화에 따라 발전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미적분과 직관의 충돌
물리적 직관을 깬 수학의 발전
그는 또한 미적분학의 발전 과정을 통해, 직관에 반하는 예외들이 수학자들 사이에 긴장과 논쟁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이러한 예외들은 수학이 절대적인 확실성보다, 논증과 검증을 통해 꾸준히 진화해온 학문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학과 정치의 만남
미국 헌법 속 수학적 표현의 영향
정치적 이념과 수학의 연결도 흥미롭다. 쿠차르스키는 미국 헌법 초안 작성 시 사용된 언어가 수학적 확실성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고대 그리스 수학을 공부하면서 논리적 사고를 연설에 적용해 설득력을 높였다. 그는 연설에서 반론의 모순을 짚어내는 방식으로 상대 주장을 반박하는 데 수학적 논리를 활용했다.
차와 임상시험의 공통점
무심코 나눈 대화에서 비롯된 생물통계학
임상시험 설계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쿠차르스키는 생물통계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로널드 피셔가 평범한 차(tea) 관련 대화에서 통계적 원리를 착안했다고 소개한다. 이는 일상적 경험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증거의 조건
작동 원리를 몰라도 신뢰 가능한가?
인공지능(AI)의 영향도 다뤄진다. AI 시스템이 내놓은 결과는 종종 설득력 있게 보이지만, 그 작동 방식이 불투명할 경우 확실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쿠차르스키는 우리가 과연 이해하지 못한 기술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찾다
정서적 반응이 팩트 검증을 대체할 때
그는 현대 사회에서 허위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사람들은 종종 사실 확인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이는 집단적 신뢰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 무분별한 회의주의는 결국 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쿠차르스키는 경고한다. 그는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말을 인용하며, 적절한 회의와 믿음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의견:
이 책은 단순히 수학이나 과학에 국한된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폭넓게 사유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지금, '설명할 수 없는 정확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쿠차르스키는 숫자와 공식이 아닌, 사람의 심리와 문화가 증거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조명함으로써 독자에게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