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전 속 에너지 수요 급증…전 세계 전력 시스템에 경고등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기회와 동시에 커다란 도전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데이터센터, 도시 단위 전기 삼키는 ‘전력 공룡’
AI 기술을 학습하고 배치하는 과정은 대규모 고성능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며, 이들이 사용하는 전력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IEA에 따르면, AI 특화 데이터센터 하나가 사용하는 전력은 평균적으로 약 10만 가구의 소비량에 달하며, 현재 건설 중인 최대 규모 시설은 이보다 20배 이상의 전력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소비한 전력은 약 4,150테라와트시(TWh)로, 이는 세계 전체 전력 소비의 약 1.5%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역적으로는 훨씬 큰 영향을 미치며, 미국이 전체의 45%를 소비해 1위를 차지했고, 중국(25%), 유럽(15%)이 뒤를 이었다. 특히 미국의 데이터센터 절반은 단 5개 지역 클러스터에 집중돼 있어 지역 전력망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2030년까지 전력 소비 두 배 이상 증가 예상
IEA는 현재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두 배 이상 증가해 9,450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 일본 전체의 전력 소비량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이러한 증가의 핵심 동인은 바로 AI 기술의 급격한 확장이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 수요 증가의 절반 가까이(47%)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경에는 미국 내 모든 주요 중공업(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화학 등)의 전력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력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수 있다.
IEA는 2035년에는 이 수치가 최대 1만7,000TWh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AI 수용 속도와 에너지 효율 향상 여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7,000TWh로 억제될 수 있지만, 가장 급진적인 경우 1만7,000TWh에 이를 수도 있다.
전력 공급도 중요하지만 인프라 투자 필수
이 같은 AI 기반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IEA는 다양한 에너지원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한다.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가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소형 모듈 원자로(SMR), 첨단 지열 등 신기술도 활용될 전망이다.
2035년까지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량의 절반은 재생에너지로 감당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천연가스를 통해 175TWh의 추가 수요를 충당할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은 중국, 일본, 미국 중심으로 확대될 예정인데, 초소형 원자로(SMR)는 2030년 첫 가동이 목표다.
그러나 발전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IEA는 노후한 전력망이 의미 있는 제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계획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중 약 20%가 전력망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따라서 전력 인프라, 특히 송전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시급하다.
AI는 에너지 소비 증가뿐 아니라 절감의 열쇠이기도
아이러니하게도, AI는 자체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해결사’ 역할도 가능하다. IEA는 AI의 활용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석유·가스 산업에서는 탐사, 생산, 유지보수, 안전 관리에 AI를 이용하며 메탄 감축에도 기여
-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예측 향상 및 전력망 운영 최적화 가능
- 산업 부문에서는 공정 최적화를 통해 에너지 절약 효과
- 교통 부문에서는 AI 기반 교통 흐름 및 경로 최적화로 에너지 소비 축소
- 새로운 에너지 기술의 개발 및 시험 과정을 가속화
통합의 걸림돌은 '규제'와 '보안'
하지만 AI 기술을 에너지 부문에 완전히 통합하기까지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데이터 접근성과 품질 문제, 디지털 인프라 부족, 복잡한 규제 프레임워크, 사이버 보안 위협이 꼽힌다. 실제로 지난 4년 간 전력기관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은 세 배나 증가했다. 첨단 기술에 필요한 광물의 공급망 보안 또한 중요한 이슈이다.
IEA는 기술 산업, 에너지 부문, 정부 간 더 깊은 협력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의 전략성과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송전망 통합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AI가 탄소 배출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지만, 잘못 활용될 경우 오히려 반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AI는 양날의 검…에너지 문제 해법 될 수 있을까
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AI는 에너지 분야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라며, “AI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회와 정부, 기업의 몫”이라고 말했다.
의견
이번 보고서는 AI의 발전이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특히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력망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처럼 국토 면적이 좁고 전력망이 복잡한 국가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책 결정자와 산업계 모두가 AI 기술의 혜택만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에너지 발자국(energy footprint)’에 주목하고 균형 잡힌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동시에 AI의 긍정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규제 개혁과 보안 기반 개선 역시 병행돼야 한다. 단순히 ‘AI는 미래다’라는 구호보다는, 그 미래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