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4년 후에도 음악을 만드는 '인공 뇌' 작곡가 탄생
호주에서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손을 잡고, 미국의 실험음악 거장 알빈 루시에(Alvin Lucier)를 다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목받고 있다. 어둡게 조성된 전시장 안에서는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율하는 듯한 소리가 퍼지지만, 연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관람객들 앞에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미니 뇌'가 실시간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경과학과 예술의 만남… '생명 재현' 실험
이 작품은 'Revivification(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서호주 아트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프로젝트는 아티스트와 신경과학자로 구성된 팀, 일명 '네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추진했다. 이들은 2018년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루시에는 2020년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기로 동의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프로젝트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루시에의 백혈구는 줄기세포로 재프로그래밍된 뒤 인간 뇌를 모방하는 소형 '대뇌 오가노이드(cerebral organoid)'로 변환됐다. 팀은 루시에의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매주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공유했고, 루시에도 미약하지만 창의적인 의견을 닿으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인공 뇌'가 만든 소리와 반응하는 설치 작품
전시에는 20개의 대형 포물선형 황동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들은 미니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신호에 즉각 반응한다. 루시에의 오가노이드는 전극에 장착되어 있어, 이를 통해 신경 신호를 포착하고, 소리를 만들어내며 다시 청각 자극에 반응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뇌와 설치 작품 사이의 긴밀한 상호 작용을 통해 독창적인 음향 경험이 완성된다.
AI, 생명윤리, 창작의 경계를 묻다
'Revivification' 프로젝트는 생명 윤리, 인공지능(AI), 그리고 창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제작진은 이를 엄연한 예술 작품으로 규정하며 과학을 부차적인 요소로 본다. 나아가 이 인공 뇌가 앞으로 '새로운 기억'과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이 작품을 통해 루시에의 유산이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어진다고 평가한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성과 창작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새롭게 열어 보였다.
이번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은, 과학기술이 단지 기능적 발전을 넘어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도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에도 창작 활동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기존 예술가 개념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인공 뇌를 통해 창조된 음악을 과연 '루시에의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지, 예술의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이 될 것이다.